유성문의 길]‘카지노 앵벌이의 하루’

환상의 신기루, 인생의 막장

나는 강원랜드 앵벌이다. 알뜰살뜰 모은 돈에다 빚까지 내어 생돈 11억을 날리고, 아직도 대박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카지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인생의 패배자로, 도박중독증 환자로 여긴다. 한때는 나도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쉴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경향신문)



오늘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다. 카지노 손님들에게 달라붙어 눈치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살아가는 즐거움과 행복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렸고,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와 미련도 사라졌다. 희망의 빛과 시간개념조차 느껴지지 않는 진공상태의 삶,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물만 흘릴 뿐이다.

- 김완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 중에서


그는 한때 동대문에서 잘나가는 의류상인이었다. 셈도 빠르고 집착력도 강해 일찍 시작한 장사에서 제법 재미를 보았다. 10여 년 장사를 하는 동안 자기 가게에 직원도 두고, 결혼해서 집도 장만하고, 외제차도 굴리고, 마누라 몰래 비자금통장에 항상 5000만~6000만 원 정도의 잔고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다 새벽같이 일어나 악착같이 장사에 매달린 덕분이었다.

유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왔다. 어느 날 친구모임에 나갔다가 우연히 카지노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장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신으로서는 먼 딴 나라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지만 은근히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가끔 재미삼아 하는 화투에서 유난스러운 승부욕 탓인지 결코 잃는 법이 없었던 그였다. 언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언뜻 내비친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였는데….

얼마 후 그날 모임에 같이 있었던 한 친구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강원랜드 쪽에 일을 보러 갈 작정인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장사에 쫓기는 처지였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넉넉히 12시간 정도면 일도 보고 한 두어 시간 카지노도 들를 수 있다는 말에 바람도 쐴 겸 하고 따라나섰다. 가는 차 안에서 친구놈에게 들은 게임방식이 전부였다. 그는 30만 원을 들여 생전 처음 블랙잭이라는 것을 해봤고, 결과는 250만 원을 따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악마가 보내는 미끼였고 달콤한 유혹의 시작이었다.

이게 내가 살길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뼈빠지게 일해야 했던 것은 그렇다 치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1억 원씩이나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로서는 이제야 비로소 승부도 빠르고 유독 분석적인 자신의 성격과도 딱 부합하는 벌이 겸 놀이를 찾아냈다고 여겼다. 그리고 모든 것은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3개월 만에 1억 원을 잃었다. 이번에는 될 듯 될 듯 안 되는 게임에서 어떻게든 잃은 돈을 되찾겠다는 집념에 매달렸다. 그것이 어떻게 번 돈인데…. 그리고 6개월 만에 10억 원을 더 잃었다. 끌고 갔던 차를 전당포에 넘긴 것은 물론이고, 가게를 빼고 집도 넘겼다. 이혼을 당하고, 친구도 친척도 모두 잃었다. 그동안 내일 당장 줘야 할 직원들 월급을 몽땅 날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핸들을 벼랑 쪽으로 틀려 했던 것이 몇 번이었던가. 그것은 채 40이 되기도 전에 찾아온 인생의 ‘오링’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카지노 앵벌이가 되었다.

앵벌이 ‘오방이(오링방지)’의 하루는 사북의 한 사우나에서 시작된다. 밤새 카지노에서 버티다가 오전 6시 영업 마감시간에 나와서, 컵라면에 찐 계란 세 개를 정신없이 처먹고 똥 좀 싸고 신문 좀 보고 씻고 나니 오전 8시. 휴대전화를 통해 ARS(카지노 입장예약 서비스) 당첨번호를 확인해보니 27번! 토요일 당첨번호 27이면 기본 10만~20만 원은 확보한거나 마찬가지다. 기대 반, 피곤 반… 음냐, 쩝~! 어떻게든 버티자. 잠들면 그것도 다 허사다! 오전 9시가 다가오자 구석구석에 짱박혀 자고 있던 앵벌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모여들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회사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처럼 다들 분주히 움직인다.

‘강랜(강원랜드)’ 카지노 앵벌이들의 주 수입원은 ARS 미당첨이거나 뒷번호 당첨에게 자리를 팔거나, 한꺼번에 여러 게임이나 상한액 이상으로 베팅하려는 전주(錢主)를 대신해 게임을 해주고 얻는 커미션이다. 이들은 대부분 강랜에서 완전 ‘오링’되어 오갈 데도 없는 ‘개털’들로 카지노에 빌붙어 하루하루 살아간다. 앵벌이들의 생존이 가능한 것은 강랜 카지노의 기형적(?) 규제 때문이다. 그들은 예전에 자기 돈 내고 게임을 하면서 입장 순서를 추첨으로 배정받아야 하고, 아무리 ‘촉’이 올라도 일정 이상 베팅을 할 수 없는 제한규정을 누구보다도 원망했던 당사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그 불합리한 규제에 기대어 먹고산다.

‘오방이’ 김완씨(40)에 의하면 현재 강랜의 앵벌이급들은 7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들은 ‘A급 중독자’면서 강랜의 상주인(常住人)이고, 앵벌이는 그들에게 일종의 직업인 셈이다. 빈털터리인 채로 사회로 복귀하기도 어렵지만, 어렵게 일자리를 잡는다 해도 거기서 얻는 소득보다 앵벌이로 얻는 수입이 훨씬 더 많다. 비록 그 돈은
최저생활비만 빼고 몽땅 다시 강랜에 환원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한때나마 큰돈(지금은 다 잃어버렸지만)을 만졌던 사람이 대부분인지라 더더욱 그렇다. 오방이는 앵벌이짓이 가능한 강랜의 기형적 구조가 그들의 사회 복귀를 가로막는 셈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렇기만 한 것일까.

강원랜드 카지노는 폐광지역 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명분 아래 정부와 강원도가 주도하는 범국가적인 사업인 ‘탄광지역 개발촉진지구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공포하여 내국인 출입 카지노 건설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였고, 1999년 스몰카지노를, 2003년에는 메인카지노를 개장하였다. 현재까지 연인원 840만 명 이상이 입장하였고, 그 중 절반 정도는 반복적으로 드나드는 1500명 정도의 중독자로 이루어진 연인원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정 지역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전 국민을 상대로 도박을 하고 있다’는 강랜 카지노는 사고가 터지고 원성이 드높아질 때마다 규제를 강화하여 왔다. 보상당사자인 사북 일대 주민들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현재 대부분 지역상권을 외지인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둘째 치고 숱한 원주민들이 보상과 개발에 따른 이익을 다시 강랜에 토해냈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강랜은 현지인 월 1회 이상 출입제한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것은 엄연히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왕 내국인 출입허가를 내려놓고 특정지역 거주인이라 하여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또 무언가.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미 도박중독에 빠진 원주민들은 제한조치를 피해 주민등록지를 이웃 지역으로 옮기는 소위 ‘위장전입’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담배소송의 경우처럼 카지노의 폐해를 들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 피해로 따지자면 담배는 도박에 댈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강랜이 점점 사업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해가는 불가사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리조트에 골프장은 건전 레저타운을 표방한다는 명목으로 넘어가준다고 치고, 새로 건설한 스키장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지역 자연환경을 십분 살린 경우라고는 하지만, 스키장의 주 고객이 누구인가. 젊은 스키어들은 스키를 타러 왔다가 밤새 카지노 게임을 즐기기 십상이고, 젊으므로 당연히 모험심이 강하고 빠르게 도박중독에 빠져든다.

일부에서는 규제가 심해질수록 더 좋은 환경에서 마음놓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로 빠져나간다며,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왕 만든 거 대폭적으로 규제를 철폐하고 더 나아가 복수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허가해 서로 경쟁하면서 서비스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지노도 이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키워가야 한다는 논리와 함께.

어떤 이는 강랜이 있는 백운산을 ‘사람 죽이는 산’이라고 한다. 탄광시대에 숱한 광부가 막장에서 매몰되었으며, 사북사태가 일어나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기도 했다. 이제 생각지도 않았던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많을 때는 일주일에도 몇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도 검기만 한 백운산 운탄로(運炭路)는 예전에 꽃을 꺾으며 넘었다는
화절령(花折嶺)으로 이어진다. 운탄로도 쓸모를 잃은 지금, 누가 또 꽃을 꺾는가. 아무리 막대한 이익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어떤 사람의 삶이 파괴된다면 그것은 나라가 할 짓이 아니다. 돈이 된다면 매춘과 같은 향락사업까지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키워나갈 것인가. 경마에, 경륜에, 경정에, 로또에, 심지어 개나 지렁이 경주까지라도 시켜서 내기를 걸려는 도박공화국에서 그저 공허한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라는 책을 내면서 이제는 그것 때문에라도 아직 카지노를 떠나지 못하는, 반은 글쟁이고 반은 앵벌이가 되었다는 김완씨의 소망은 절절하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강랜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서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공연한 흥분을 불러 일으키는 붉은 카펫 위에서의 삶이 아니라 생활의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역시 슬픔도 기쁨도 똑같이 느낄 줄 아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글·사진|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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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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